Euljiro

윤주희 개인전  |  @juheeyoun

《하품을 기다리며 Waiting for HAPUM》

2026.8.19 - 2026.9.23  



하품을 기다리며


하품은 누구나 하는 행위지만, 그 원인은 여전히 명확하지 않다. 피곤해서 한다고도 하고, 뇌의 온도를 낮추기 위해서라고도 하며, 집중력을 회복하기 위한 생리적 반응이라는 연구도 있다.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에서 일어나고, 전염되지만 강요할 수 없으며, 무례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지만 누구도 그것을 쉽게 비난할 수는 없다. 이처럼 하품은 가장 일상적이면서도 끝내 설명되지 않는 몸의 언어이다. 평소에는 누구도 의식하지 않던 존재가 하품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의 호흡을 듣고, 그가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하나의 하품은 또 다른 하품을 불러온다. 하품은 단순한 생리 현상이 아니라, 존재가 존재를 깨우는 하나의 사건이 된다.

 

하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도 갖고 있지 않다. 의미를 만드는 것은 하품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누군가는 하품을 무례한 행동으로 받아들이고, 또 다른 누군가는 지친 몸의 신호로 읽어낸다. 어떤 이는 편안함과 안정, 평화를 드러내는 몸의 표현으로 바라본다. 모든 것을 통제하려는 권력의 위치에서 바라볼 때 하품은 저항이자 조용한 존재의 선언이 된다. 반대로 고통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타인의 하품이 자신의 고통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상대가 평온하게 숨을 내쉴수록 자신의 고통은 더욱 또렷해진다. 그러나 상대의 안녕을 바라는 사람에게 같은 하품은 안도의 호흡이 된다. 그 사람이 마침내 편안히 머물 수 있는 자리를 찾았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결국 하품은 권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바라보는 사람의 상태를 드러내는 사건이다. 나는 이번 전시에서 하품을 무기력의 상징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자리를 비로소 찾은 존재만이 내쉴 수 있는 가장 평화로운 호흡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긴장한 몸은 쉽게 하품하지 못한다. 자신의 존재가 비로소 허락된 순간, 몸은 긴장을 풀고 가장 깊은 호흡을 시작한다. 하품은 몸이 말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이다.

 

이번 전시는 하품을 보여주는 전시가 아니다. 누군가의 하품을 통해 이전에는 보이지 않던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하는 전시이며, 누구나 마음 놓고 하품할 수 있는 상태를 상상하는 전시이다. 누군가의 하품은 그 사람이 여전히 살아 있다는 신호이자, 그 존재를 비로소 인식하게 만드는 작은 선언이다. 또한 곧 문을 닫는 이 공간에서 울려 퍼지는 하품은 수많은 예술과 시간을 품어온 장소가 마지막으로 내쉬는 가장 편안한 숨이 될 것이다.

 

이제 당신은 하품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그 의미는 하품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당신에게 달려 있다.



글, 디자인

윤주희 @juheeyou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