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존 더럼 피터스(John Durham Peters), 『자연과 미디어(The Marvelous Clouds)』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낸 환경 중에서 낡고 지루해 보이는 부분들을 무시한 채 밝거나 빛나거나 새롭거나 무서운 부분들만을 따로 떼어내서 ‘테크놀로지’라 부르는 쓸모없는 습관을 갖고 있다. (...) 단조로움을 인식하는 것은 생각의 넓이를 보여 주는 잣대다.”
-『자연과 미디어』 p. 69.
이 책은 가장 새로운 미디어와 더불어 가장 ‘단조로운’ 미디어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단조로운 미디어는 너무 당연한 것이라 인지하지 못하는, ‘환경’이라 부를 수 있을 만한 곳에 있다. 미세먼지 이슈가 부각된 이후로, 그리고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일상을 침투하여 마스크 없이는 이동할 수 없는 지금에 이르러, 사람들은 그 어느 때보다 공기가 ‘미디어’임을 인지하며 살아간다. 오늘날의 공기는 거기에 있던 것이자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기도 하다. 보이지 않는 자연환경으로 여겨졌던 공기는 이제 심리적·사회적인 가시성을 획득했다.
<자연과 미디어>는 이처럼 일상의 보이지 않는 토대를 형성하는 ‘인프라(infrastructure)’로서의 미디어를 다루며 인간과 자연까지 ‘미디어’의 범주에 포함한다. 점차 설득력을 얻고 있는 이러한 사유는 그러나 언뜻 훑었을 때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저자는 2장에서 미디어로서의 ‘바다’와 고래목과 구별되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다룬다. 3장 ‘불의 설법’에서는 통제된 자원으로서의 불을 이야기하며, 4장과 5장에서는 달력과 시계의 기준이자 GPS의 시점인 ‘하늘 미디어’를 다룬다. 그리고 6장 ‘얼굴과 책’, 7장 ‘신과 구글’에서는 자연의 4원소에 관한 논의는 자연스럽게 컴퓨터와 페이스북, 구글에 관한 논의로 이어진다. 구글과 하늘 그리고 신학은 밀접한 관계 내에서 논의된다. 심지어 미디어 이론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융합하는, 형이상학을 넘어 ‘모든 것에 대한 학문’으로까지 확장된다!
이와 같은 서술은 ‘갈 때까지 간’ 미디어 담론의 끝을 보여준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경계 없이 확장된 논의의 영역에서 독자는 잠시 어지럼증을 느낄지도 모를 일이다. 저자는 이러한 인식이 디지털 미디어의 도래 이후 가능해졌다고 설명한다(아래의 인용이 이해를 도울 것이다).
“디지털 기기는 우리로 하여금 미디어를 단지 (...) 의미를 주입하는 도구가 아니라 우리 서식지의 일부인 환경으로 생각할 것을 권한다. 이 책은 디지털 미디어의 도래가 우리를 커뮤니케이션과 문명에 관한 근본적이고도 영구적인 문제로 돌려보낸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한다.” - p. 30.
"디지털 미디어는 질서와 유지 보수의 기본 작업, 데이터가 우리 존재를 만들어 내는 방식, 그리고 지구상의 인간 주거지 핵심에 놓인 테크닉을 가리킨다. 디지털 미디어는 쓰기, 주소, 숫자, 이름, 달력, 시간 기록, 지도, 돈과 같은 올드 미디어를 부활시킨다. 디지털 미디어는 항해, 재배, 별 바라보기, 날씨 예측, 문서 기록, 어업과 같은 오래된 일들에 새 생명을 불어넣어 준다.“ - p. 32.
이 책에 따르면 뉴미디어는 올드 미디어와 완전히 구별되는 ‘새로운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지만, 인간 존재를 새롭게 바라보고 정의할 수 있게 하는 계기로서 기능한다. 그렇기에 저자의 미디어학은 형이상학과 신학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영화 <테넷>을 여러 번 봐야 했던 것처럼, 이 책은 여러 번 들추어봐야만 장들 간의 연결고리와 풍부한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김명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