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래 작업실 탐방 #2

: 박태훈

박태훈 작가와 작업실

Q.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어떤 일들을 해왔고, 어떤 작업을 하고 있나요?

안녕하세요. 저는 29살 그림 그리는 박태훈입니다. 회화 작업을 위주로 하고 있고, 나로 사는 방법, 나로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을 담고 있어요. 내 정체성이나 뿌리를 찾는 에고트립이라기 보다는, 나라는 실존에 대한 질문이었던 것 같아요. ‘나’에서 출발해 내가 살아왔던 과거, 과거에 내가 살았던 환경, 더 나아가 세상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어서, 지금은 나라는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보는가를 시각화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맹인모상(盲人摸象)’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장님 여럿이 코끼리를 만지면서 코끼리가 어떤 동물일 것이라고 서로 다르게 추측하는 이야기인데요, 세상과 개인의 관계도 맹인과 코끼리의 관계같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도 살아가면서 각자 편협한 정보와 지식, 경험을 모아 세상을 이해하고 바라보니까요. 그래서 이미지를 구성할 때도 조금씩 다른 레이어들을 중첩시키거나 왜곡하며 화면을 채워나가는 방식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Q. 작업에서 보이는 화려한 색감은 어떻게 만들어진건가요?

색감에 대해 많이 궁금해하시는데요, 장님이 만져서 상상하는 코끼리처럼 개인이 바라보고 이해하는 세상 자체도 일종의 가상, 판타지와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의도적으로 일반적인 대상의 색 대신 가장 인공적으로 보이는 색을 사용하게 되었어요. 그 결과 만들어지는 이미지는 혼란스럽고 불안해 보이기도 하고, 긍정적으로 이야기하면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오기도 해요. 그리고 이런 양가적인 느낌이 제가 세상을 이해하는 관점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Q. 그럼 주로 식물이나 자연의 소재가 많이 등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자연이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반대로 무엇도 아닌 대상이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가진 파편화된 정보와 지식도 어떤 구조나 맥락을 이루기 전까지는 아무 의미 없고 몰가치하면서도 잠재력을 지닌 것들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생물, 건축물, 인공물보다는 자연이 더 적합한 소재라는 생각에 작업의 소재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Forest acrylic on canvas 130.3×162.2cm 2021

Shurb acryilc on canvas 112.1 X 162.2cm 2018

Q. 환풍기에 페인팅한 작업도 눈에 띄는데요, 캔버스가 아닌 오브제 위에 페인팅하는 작업도 하고 계시나요?

회화 작가들이 평면에서 한계를 느끼고 입체나 공간으로 확장시키는 경우가 있듯이 저도 비슷한 계기로 시도해본 것인데요, 나로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질문을 던졌을 때, 내가 만든 이미지를 통해 나를 드러낸다기보다, 이미지가 나를 만들지도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환풍기는 무언가를 걸러주는 사물이잖아요. 환풍기 외에 헬멧이나 방독면에 작업한 것도 실존을 맥락화 하는 이미지에 대해 생각하다가 시도하게 된 작업입니다.

Q. 그럼 앞으로도 평면을 입체로 확장시키는 작업을 계속 시도하실 예정인가요?

현재 레이어를 중첩시키고 구조화하는 방식으로 평면의 화면을 만들어내고 있는데요, 캔버스 틀도 하나의 레이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레이어들을 분리시킨 뒤 3차원 공간에서 다시 겹쳐놓는 방법을 구상하고 있어요. 그리고 레이저 컷팅을 통해 커다란 스텐실 틀을 만들어서 캔버스에 찍어내고, 다시 한 공간 안에 스텐실 틀과 캔버스를 함께 구성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어요.

Q. 작업량이 정말 많은 것 같은데요, 작업실 공간을 계속 유지해오셨나요?

처음에는 미술학원에서 강사로 일을 하면서 남는 방을 작업실로 사용했어요. 그런데 코로나로 학원이 없어지는 바람에 제 개인 작업실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Emerald root acrylic on canvas 90.9 72.7cm 2019

Q. 그럼 문래동에 작업실을 마련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문래에서 작업하는 것의 장단점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미술학원에서 작업할 때는 아무래도 개인 공간이 아니다 보니 자유롭게 사용하는 데에 제한이 있었어요. 그래서 새 작업실을 구할 때 기준이 편하게 쓸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물감도 막 뿌릴 수 있고, 피곤하면 잘 수도 있고, 내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는 공간을 찾다 보니 이곳으로 오게 되었어요. 문래동은 공장지대이고 노후화된 건물도 많은데, 작가 입장에서는 그런 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어요. 이외에 장점은 주변에서 작업하는 작가들이 많다는 점, 단점은 공장이 많다보니 저녁 이후에는 거리가 빨리 어두워지고 사람이 없다는 점인 것 같아요.

Q. 문래동에서 소개하고 싶은 장소가 있다면?

제 작업실에 놀러오세요. 여기 상가 아래 고깃집도 맛있답니다.

Q. 팬데믹이 선언된 지도 벌써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전시를 비롯해 주로 물리적인 매개를 기반으로 하는 시각예술 활동에도 크고 작은 변화나 제약이 있었는데요, 작업을 이어나감에 있어 코로나로 인한 여파를 실감한 적이 있나요? 전시, 작업, 삶 가운데 팬데믹 이후 변화된 부분이나 힘든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앞서 말했지만, 코로나 이후 일하던 미술학원에 학생들이 유입되지 않아 작업실을 나오게 된 일화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크게 다가오는 것은 전시의 오프닝 문화가 사라졌다는 점이에요. 혼자서 작업을 해오다 보니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소중하거든요. 전시의 오프닝 행사가 저에게는 다양한 작가분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그런 기회가 줄어들었어요.

그리고 펜데믹이 오면서 미술에서도 메타버스, 가상공간, 블록체인 등에 대한 니즈가 훨씬 더 생긴 것 같아요. 이전에도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 외에 작업을 보여줄 수 있는 다양한 루트에 대해 고민해왔는데요, 작업실을 구하면서 맨 처음 오픈 스튜디오를 연 것도 그런 생각의 일환이었어요. 갤러리는 가능성이 무한한 공간이기도 하지만, 벽에 구멍을 뚫지 않아야 한다거나, 칠을 하면 안된다거나, 작업을 설치하고 보여주는 방식에 제한을 받을 때도 있거든요. 펜데믹으로 인해 가상 공간에서의 전시가 많이 시도되고 있는데, 이런 점은 긍정적인 부분인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말씀하신 온라인 전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실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전시만큼의 효과를 주기에 부족한 느낌이 있지는 않나요?

기술은 있는데 기술에 맞는 예술 작품이 아직 등장하지 않은 것 같아요. 아직 실제 공간에 있는 작품의 이미지를 가상에 옮겨놓은 것뿐인 전시들이 대부분이니까요. 보여지는 방식에 기술이 더해졌다고 해서 새로운 형식의 예술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가상공간에 적합한 새로운 예술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지금은 과도기적인 시점이지만, 얼마 뒤에는 가상공간에서 체험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작품이 등장하지 않을까요? 최근 전기차가 많이 나오면서 내연기관 자동차가 한순간 올드한 것이 되어버린 것처럼, 가까운 미래에 가상공간에서의 예술이 줄 수 있는 감흥이 실제 공간의 것을 뛰어넘는다면 사람들은 무조건 전자를 택할 것이라 생각해요.

Q. 앞으로의 활동 계획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올해 초에 단체전과 페어에 많이 참여하면서 에너지를 많이 쏟았어요. 남은 하반기에는 새로운 시도도 해보고,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질 것 같습니다.

인터뷰 진행 / 글 김소희 (상업화랑 전시기획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