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세 번째 방
도시 곳곳에는 정확히 이름 붙이기 어려운 공간들이 있다. 방으로 여겨지지만 온전히 머물 수 있는 곳은 아닌, 전시장이지만 어딘가 임시적이며 실내와 외부가 느슨하게 열려 있는 예외적인 곳. 그렇게 예술가들에게 어떤 방들은 오래된 이미지의 표면에 남아 있으며 또 어떤 방은 누군가의 목소리와 말끝, 망설임 속에 숨어 있다. 김민회와 다이의 2인전《세 번째 방》은 재개발을 목전에 둔 을지로 상업화랑의 다른 층, 다른 공간에서 출발하지만, 전시는 그 사이, 혹은 작가들 전시 너머에 또 하나의 방을 만든다.
김민회의 작업은 낡고 흔한 대상에서 시작된다. 빈집 미닫이문에 붙어 있던 난초 문양, 길가의 식물, 방 안에서 키우는 난초, 조경용 조화, 그리고 바늘구멍사진기로 촬영한 흐릿한 식물의 이미지는 각기 다른 대상이지만 작가에게는 다르지 않은 위상을 지닌, 다만 ‘대상’이 될 뿐이다. 난초는 고상한 사군자의 이미지를 벗어나 흔한 장식이 되고 이름을 알 수 없는 풀은 단순한 형태가 되며 작가의 작업을 거쳐 사진과 드로잉으로, 희미한 흔적으로 옮겨진다. 김민회는 이런 과정에서 이미지가 어떻게 특정한 기호로 고정되고 또 어떻게 낡아가고 흐려지며 끝내 불분명한 감각으로 남는지를 살핀다.
그의 작품 속 식물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대체로 흐리고, 옅고, 때로는 지나치게 확대되거나 조각나 있다. 긴 잎의 곡선은 난초의 잎처럼 보이다가도 금세 유리창에 남은 자국이나 감광된 인화지의 흔적처럼 느껴진다. 종이 위에 쌓인 반복된 연필 자국, 각재로 짜인 틀, 함석판과 종이 조각, 테이프와 박음질의 흔적은 이미지를 고정하기보다 오히려 이미지가 불안정하게 놓인 상태 그 자체를 드러낸다. 김민회에게 사진은 대상의 이미지를 정확히 붙잡는 매체가 아니라, 세잔이 ‘온전히’ 재현하려 붙들었던 생투빅투아르 산처럼 붙잡으려는 순간 실패하고 흔들리는 감각적 대상에 가깝다. 그렇게 작가의 바늘구멍사진기의 흐릿한 결과물은 바로 그 실패의 시간을 품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 실패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김민회는 사진이 되지 못한 사진, 난초가 되지 못한 식물, 장식이 되지 못한 문양, 작품이 되고 남은 재료들을 다시 불러 모아 그 조각들을 하나의 정돈된 이미지로 만드는 대신 서로 기대고 겹쳐 느슨한 구조를 만든다. 그렇게 그의 식물, 대상들은 재현이 아니라 문화적 기호와 삶의 잔여물 그리고 작가의 흔적이 남긴 시간이 층층히 쌓인 표면이 된다. 그렇기에 김민회의 공간은 우리가 이미지를 식물로, 문양으로, 사진으로, 회화로 오인하며 분류해 온 방식을 다시 바라보는 장소가 된다.
다이는 5층 옥상 전시 공간을 하나의 둥지로 받아들인다. 칠해지지 않은 합판 벽, 복도에서 이어져 옥상으로 열리는 두 개의 문, 그 사이를 통과하는 바람 등 공간이 만드는 조건은 작가로 하여금 이 공간을 까치집으로 인식되게 한다. 특히 도시 속 새 둥지는 어디선가 물어온 나뭇가지와 철사, 비닐, 반짝이는 조각들이 뒤섞여 만들어져 한편으로 불안정한 구조를 가진다. 그러나 바로 그 불안정한 둥지처럼 을지로 낡은 건물의 옥상 전시장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가 잠시 머물며 쉬고 생각할 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다이의 이전 작업은 말로 이루어진 기억을 더듬는 것이었다. 그는 노년 여성들과의 대화 속 발생하는 과장과 생략, 망설임과 침묵, 확신하지 못하는 어조와 어정쩡한 맺음말에 주목했다. “그랬대, 확실한 건 아니야, 보긴 봤는데 모르겠어.” 이 같은 말들은 어떤 사건을 정확히 증언하기보다, 말하는 사람이 겪은 시간의 결을 드러낸다. 다이는 그 말들 사이의 간격과 오해를 단순한 왜곡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그 틈을 포착되지 않는 진실의 감각이 드러나는 지점으로 인식한다.
이번 전시에서 다이는 도자기로 만든 기다란 풍경을 공간에 설치한다. 전시장을 통과하는 바람과 관객의 움직임은 도자기 조각들을 흔들고 그 조각은 부딪혀 낮은 소리를 낸다. 그 표면에는 작가가 상상한 이야기가 조각나 쓰여 있지만 이야기는 온전히 읽히지 않는다. 흔들리는 조각들은 뒤집히고 멀어졌다 가까워지면서 텍스트는 부분적으로만 관객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때 글은 내용을 전달하는 설명이 아니라 흩어진 말의 파편이 된다. 그리고 그 파편들 사이의 거리는 작가가 주목했던 망설임과 침묵처럼 말들 사이의 간격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 파편들이 서로 부딪혀 내는 소리는 마치 누군가를 부르는 신호처럼 공간 안에 퍼진다. 다이의 평면 작업 역시 기억을 환기하는 이러한 공간의 맥락 속에 놓인다. 그의 평면 작업은 칠하고 그리는 대신 물감, 먹물, 아교 등을 물에 풀어 캔버스 천을 담그고 비틀어 짜는 과정에서 생겨난 얼룩과 주름으로 구성된다. 이 작업은 치매를 앓던 할머니가 겨울 이불을 반복해서 손빨래하던 기억에서 비롯되는데 빨지 않아도 될 이불을 계속해서 빨던 할머니의 행동은 당시에는 무의미한 반복처럼 보였지만 작가는 함께 이불을 빨며 그 행위 안에 남겨진 불안과 습관, 돌봄과 기억의 감각을 더듬는다. 그렇게 천 위에 스며든 색과 접힌 자국들은 특정한 장면을 재현하기보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억을 몸의 움직임, 보다 적극적인 제스처를 통해 할머니에 대한 기억을 체화하는 방식에 가깝다. 옥상 전시장이 바람과 소리, 파편화된 문장들로 기억을 불러오는 방이 된다면, 이 평면 작업은 손으로 빨고 비틀어 짜고 말리는 반복의 감각을 통해 사라진 이를 다시 환기하게 하는 또 하나의 시도가 된다.
전시 공간에서 다이가 만들어낸 이야기는 완결된 서사로 정리되지 못한다. 대신 그 공간은 조각난 말, 빛을 받아 반짝이는 도자기의 표면, 오래전 들었을 법한 목소리, 그리움, 돌아갈 수 없는 고향, 무의식적으로 회귀하고 싶은 장소의 감각이 서로 뒤섞이며 하나의 불안정한 둥지가 된다. 그렇게 다이의 공간에서 시각은 소리를 만들고, 소리는 다시 이미지로 떠오른다. 온전히 전해지지 못할 작가의 이야기는 말 대신 소리와 흔들리는 사물의 형태, 즉 비언어적인 감각으로 관객에게 전달된다.
전시《세 번째 방》에서 두 작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기호의 고정성을 의심한다. 김민회가 식물, 사진, 문양, 표구와 같은 이미지의 형식이 어떻게 고착화되고 다시 흐려지는지를 살핀다면, 다이는 말, 소리, 침묵, 도자기 조각을 통해 언어가 실패한/다다르지 못한 이후에도 남아 있는 감각의 소통을 탐구한다. 김민회는 낡은 이미지의 표면에서, 다이는 이야기가 전하는 흔들리는 목소리의 잔향에서 출발하지만 두 작업 모두 분명히 말하거나 정확히 보여줄 수 없는 것들을 향해 있다.
그러므로 세 번째 방은 상업화랑 건물 4층도 5층도 아닌 두 작가의 작업이 관객의 내부에서 다시 만나는 지점이 된다. 그것은 난초인지 잡초인지, 사진인지 그림인지, 사실인지 전설인지 쉽게 구분되지 않는 방이다. 또한 흐릿한 식물의 잔상, 먼지처럼 쌓인 흑연의 흔적, 바람에 흔들리는 도자기 소리, 읽히다 만 문장과 반짝이는 파편들이 서로 겹쳐지는 방이다. 이 전시는 우리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대신 아직 이야기되지 못한 감각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는지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보는 이들의 마음속에서 또 다른 방을 만들 수 있는지를 묻는다.
글/ 기획
서준호
협력
오뉴월 이주헌 @onew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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