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SAN
이길렬 개인전
《표면의 윤리》
2026. 6. 9 - 7. 11.
표면의 윤리
이미지의 과잉은 세계를 가시화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세계와의 접촉을 소거한다. 모든 것이 표상으로 환원되는 시대에 표면은 오랫동안 깊이에 종속된 부차적 영역으로 간주되어 왔다. 의미는 언제나 표면 아래에 존재한다고 믿어졌으며, 예술은 그 은폐된 본질을 발굴하는 장치로 기능해 왔다. 나의 이미지는 그러한 해석학적 위계를 유보하고, 표면을 존재론적 사건이 발생하는 일차적 장소로 호출한다.
여기서 표면은 더 이상 외관이나 피막이 아니다. 그것은 물질과 시간, 생성과 소거, 접촉과 침식이 교차하는 역동적 장이며, 존재가 스스로를 현시하는 미분화된 경계면이다. 화면에 축적된 긁힘과 균열, 압착과 박리의 흔적들은 어떠한 재현적 질서에도 귀속하지 않는다. 그것들은 대상을 지시하지 않으며 의미를 전달하지도 않는다. 다만 사라짐과 남겨짐 사이에서 발생하는 물질적 잔여로서 현존한다.
이러한 표면은 완결된 형식이 아니라 지속적인 변이의 상태에 가깝다. 화면은 구축되기보다 퇴적하고, 형성되기보다 마모되며, 생산되기보다 소거된다. 따라서 여기서 화면은 이미지를 구성하는 행위가 아니라 흔적이 머무는 조건을 생성하는 과정으로 전환된다. 물질은 표현의 수단이 아니라 자기 고유의 시간성을 드러내는 주체적 층위로 출현하며, 인간의 의도와 우연적 힘들이 충돌하는 비결정적 공간으로 남는다.
‘표면의 윤리’란 이러한 비결정성에 대한 사유이다. 그것은 사물을 개념으로 환원하거나 의미의 체계 속에 포획하려는 인식론적 폭력을 유예하는 태도이며, 존재를 하나의 결론으로 종결시키지 않으려는 실천이다. 이때 윤리란 도덕적 규범이 아니라 타자적 현존을 해석 이전의 상태로 존중하려는 감각의 형식에 가깝다.
화면 전반에 분산된 파편적 흔적들은 중심을 형성하지 않으며 서사적 통일성 또한 거부한다. 각각의 흔적은 독립된 시간의 단층으로 존재하면서도 끊임없이 다른 흔적들과 관계를 맺는다. 그 결과 화면은 완결된 구조가 아니라 무수한 생성 가능성들이 공존하는 열린 장으로 남게 된다.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끊임없이 유예되며, 표면은 해독의 대상이 아니라 머무름의 대상으로 전환된다.
결국 이것은 이미지 이후의 회화가 어디에서 다시 시작될 수 있는가에 대한 탐색이다. 그것은 재현의 복원이 아니라 흔적의 복권이며, 깊이에 대한 탐구가 아니라 표면 자체의 존재론에 대한 질문이다. 남겨진 것은 형상이 아니라 접촉의 흔적이며, 드러나는 것은 의미가 아니라 세계와 마주한 물질의 느린 시간이다. 그 시간 속에서 표면은 더 이상 피상성의 이름이 아니라, 존재가 끝내 소멸되지 않고 머무르는 마지막 장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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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길렬
이길렬, <표면의 윤리 26-08>, 합판에 잡초, 아크릴 페인트, 우레탄 페인트, 40 x 52 x 3cm, 2025
이길렬, <표면의 윤리 26-09>, 합판에 잡초, 아크릴 페인트, 우레탄 페인트, 40 x 52 x 3cm, 2025
이길렬, <표면의 윤리 26-11>, 합판에 잡초, 아크릴 페인트, 우레탄 페인트, 41 x 53 x 3cm,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