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황인규 개인전  |  @inquiry98

《신뢰할 수 없는 기기는 어떤 제스처를 남기는가?》

2026.6.16 - 2026.7.18  



신뢰할 수 없는 기기는 어떤 제스처를 남기는가?


[전시 서문]


나는 시스템을 인간 바깥에 놓인 차가운 장치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세계를 감각하고, 자신을 구성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조건에 가깝다. 우리는 어떤 화면을 보고, 어떤 계정으로 접속하며, 어떤 규칙 안에서 움직인다. 그 과정에서 개인은 때로 이미지로, 데이터로, 역할로, 수행 단위로 번역된다. 하지만 그 번역은 결코 완전하지 않다. 아무리 정교한 구조 안에서도 인간의 몸과 감각은 조금씩 어긋나고, 그 어긋남은 사라진 개별성의 흔적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환원되지 않은 잔여로 남는다.


나는 그 환원과 어긋남 사이에 생기는 차이를 점검하고자 했다. 내가 자유롭게 보고 있다고 믿는 순간에도 이미 어떤 형식 안에서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반응한다고 느끼는 순간에도 그 반응의 리듬은 어디에서 온 것인지 묻고 싶었다. 시스템과 개인의 관계는 일방적인 지배나 저항으로만 설명되지 않는다. 둘은 서로를 기준 삼아 조정되고, 그 안에서 개인은 주체이면서 동시에 객체가 된다. 내가 관심을 두는 것은 시스템 안에서 개인이 사라지는 장면이 아니라, 다른 형식으로 재구성되고 남겨지는 방식이다.


최근 이 질문은 감각과 사고의 문제에서 행위의 문제로 옮겨가고 있다. 우리는 이미 많은 판단을 정리된 형태로 받아보고, 그것을 다시 확인하거나 수정하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자동화된 장치들이 우리 곁으로 다가오는 지금, 사고뿐 아니라 행위까지 위탁되는 순간들 또한 점차 가까워지고 있다. 관계는 무엇을 보라고 권하거나 어떤 판단을 유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점차 “대신 해주겠다”는 제안과 “확인하라”는 절차로 확장된다.


이때 인간은 단순히 사라지거나 밀려나는 것이 아니다. 직접 수행했던 행위의 일부가 다른 곳에서 먼저 처리될 때, 인간은 그 결과를 검토하고, 관리하고, 승인하는 위치에 놓인다. 이 자리는 수동적인 자리만은 아니다. 인간은 여전히 개입하고 판단하며, 때로는 그 결과에 책임을 진다. 내가 직접 실행하지 않은 일도 나의 확인을 거쳐 지나가고, 내가 온전히 알지 못한 과정도 나의 승인 아래 결과가 된다. 행위의 중심에서 조금 멀어진 인간은 그 행위의 귀속점으로 남는다.


이 전시의 제목에서 말하는 “신뢰할 수 없는 기기”는 특정한 기계 하나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이미 연결되어 있는 수많은 비인간적 조건의 이름이다. 시스템과 개인은 서로를 온전히 신뢰할 수 없지만, 동시에 서로에게 기대어 작동한다. 시스템은 인간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인간을 분류하고 인증하며, 개인은 시스템을 완전히 믿지 못하면서도 그것의 속도와 정확성, 편의에 기대어 다음 단계로 넘어간다. 신뢰할 수 없음은 관계를 끊는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가 지속되는 조건이 된다.


나는 인간이 사라진 자리보다, 인간이 여전히 남아 있는 이 이상한 자리를 보고 싶다. 그 자리는 온전히 이해하기보다 충분하다고 간주하는 자리이고, 처음부터 수행하기보다 이미 수행된 것을 검토하는 자리이며, 자유롭게 결정하기보다 주어진 조건 속에서 책임을 떠안는 자리다. 그곳에서 우리는 사용자이면서 관리자이고, 승인자이면서 동시에 결과의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된다.


《신뢰할 수 없는 기기는 어떤 제스처를 남기는가?》는 이러한 관계 속에서 현재의, 그리고 앞으로의 인간에게 남는 몸짓을 묻는다. 그 제스처는 온전히 나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고, 이미 만들어진 조건이 나를 통해 남긴 흔적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그 경계를 분명히 가르는 일이 아니라, 그 경계가 흐려지는 순간을 바라보는 일이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맡기고 있는지, 그리고 맡긴 뒤에도 무엇을 나의 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 나는 그 불분명한 자리에서 인간이 어떤 역할로 변모하고, 어떤 제스처로 남게 되는지를 바라보고자 한다.



황인규 @inquiry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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