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SAN

김서연 개인전

《캐비닛 노스텔지어》

2025. 6. 3 - 6. 21.


캐비닛 노스탤지어 Cabinet nostalgia: 시대 초상

 

 화면 위로 상이 맺힌다. 캔버스 위로, 렌즈 표면으로 하나의 시선이 남는다. 아주 정확한 관찰은―그 시선이 지지하는 주장의 방향성과 별개로―가장 타당한 분석을 제공한다. 일례로 전위(avant-garde)를 수호하며 후위(rearguard)로써의 키치(Kitsch)를 날카롭게 비판한 그린버그의 주장은 20세기의 산업사회와 대량생산 세태를 꼬집은 비판적 근거 중 하나로 손꼽힌다.1)  그러나 세기가 지나며 그가 그토록 역설했던 회화의 전위성은 해묵은 성질로, 매체의 탐구는 아카데믹한 기술로 침전했다. 그 모든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남아 있는 편평한 캔버스의 위에는 이제 무엇이 올라가 있나? 캔버스는 이제 날실과 씨실로 짜인 물질적 재료가 아니라, 이미지가 뜬 액정으로 분한다. 사진이라는 미디엄을 거쳐 키치는 우리에게 다시 돌아온다.


 김서연의 회화에 등장하는 오브제는 주로 빈티지 오너먼트(vintage ornament)로,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하는 오브제부터 도자기로 만든 피겨린(figurine)까지 다양하다.2)  이것들은 17세기 독일에서 유리 수공예의 일환으로써 상류층의 집안을 장식하다가, 이후 미국에서 대량 생산되며 광범위하게 인기를 끌었다.3) 복제가 거듭되며 예민한 라인은 둔탁하게 봉합되고, 유리의 반짝임은 셀룰로이드 특유의 미끈한 질감으로 변모했다. 이 키치한 장식품은 그것의 기원보다 더 멀리, 더 넓은 폭으로 퍼지며 1950년대 미국 가정집을 지나, 그들의 자식 손을 거쳐, 이베이의 이미지로 온라인에 부유하다 김서연의 회화로 우리에게 닿는다.


 앤티크라기보다는 빈티지가 더 적절할 법한 각각의 오브제는 그 자체로 키치의 산물이다. 흥미로운 점은 오브제로 존재할 때 흔하기 그지없던 물건들이 판매의 목적을 지니고 경매 사이트에 올라올 때, 하나의 고유한 이미지로 변모한다는 것이다. 김서연은 이베이에 올라온 이미지를 거의 그대로 캔버스에 재현해 내는데, 작품에서 볼 수 있듯이 같은 물건이라 할지라도 곁에 놓인 콜라 캔이나 줄자의 위치, 나아가 화질이나 플래시의 유무에 따라 상이한 모습을 보인다. 김서연은 키치의 매력적인 상업성과 익숙함을 가져오되, 원본성 짙은 회화로 끌고 들어옴으로써 모호한 양가성을 취한다. 이것은 50년대 미국 중산층의 향수이자 동시대 소셜 미디어 유저들의 사진 문법을 지녔고, 경험한 적 없는 추억이지만 TV시리즈 에서 본 듯한 사연과 함께 등장하며, 실제 물성을 지닌 오브제이자 한 번도 손에 쥔 적 없는 납작한 이미지로 복합적인 양면성을 드러낸다.

 

높은 채도와 특유의 광택감이 두드러지는 빈티지 오너먼트와 더불어, 이번 개인전에서 작가는 여러 각도의 피겨린을 비슷한 크기의 화면에 연달아 등장시킨다. 우리는 각각의 이미지에 대한 출처가 같은 사람인지 아닌지조차 알 수 없다. 콜라 캔의 주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것처럼, 공장에서 찍어낸 피겨린의 판매자가 누구인지 이미지로 분간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우리는 인간과 흡사하지만 절대 인간일 수는 없는 이 형상들을 본다. 묵직한 실체보다 반짝이는 이미지에 매료되는 시대의 초상이 건조한 관찰에 맺힌다. 작가는 한 번도 구매해 본 적 없는 물체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상품과 광고, 키치로 점철된 시대의 단면과 더불어 지금 우리의 노스탤지어를 정확히 관찰해 낸다. 아주 닮았지만 그만한 거리감을 갖는 것들, 겹쳐지지만 절대로 같지는 않은 것들이 주는 간극에서 오로지 외피의 반짝임만이 남아 있다. 오너먼트와 피겨린의 외피가, 핸드폰 플래시와 액정의 표면이 그러하듯이.


글ㆍ한문희



1) 클레멘트 그린버그, 『예술과 문화』, 조주연 역(경성대학교 출판부, 2019), 22-24.

2) 피겨린은 17세기 유럽의 연회 장식품으로 쓰이던 설탕 장식품에서 기원한 것으로, 주로 테이블을 장식하는 데에 사용되었다. 이윤희, 우관호, 「18세기 피겨린 형식을 응용한 현대 도예 작가 연구」, 『한국도자학연구』21:3(2024), 36-37.

3) Lillie W. Ghidiu and Gerald M. Ghidiu, “Is Your Christmas Tree-A History of Glass Insect Ornaments”, American Entomologist(52:4, 2006): 240-2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