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임은 관계로 인한 고민을 털어놓으며 각자가 지닌 관계의 의미를 다시금 정리하기 위해 시작됐다. 그렇게 우리는 ‘되새김질’이라는 행위를 거치며, 그 과정에서 관계의 어떤 지점을 바라보며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지에 대한 관점 차이를 발견했다. 이를 구체화하기 위해 과거, 현재, 미래를 관통하는 가상의 선인 ‘시간선’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왔다.
시간선을 대하는 태도에는 대표적으로 ‘In-Time(내재 시간형)’과 ‘Through-Time(통과 시간형)’이 있다. ‘내재 시간형’은 과거와 미래가 더 가깝게 느껴지기에, 과거와 미래에 쉽게 몰입할 수 있다. 이와는 대비되게 ‘통과 시간형’은 시간선 밖에서 과거, 현재, 미래를 각각 독립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기에, 시간관념이 강하며 몰입이 되지 않는다.
위의 개념들에서 영감받아, 우리는 ‘되새김질(Rumination)’과 ‘Time’을 조합한 합성어인 ‘Rumination-Time’이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 냈다. 여기서 ‘Time’이란 단순히 ‘시간’이라 는 뜻도 가지지만 시간선에서 시간형을 나누는 ‘단위’로써 중의적 역할을 한다. 즉, 우리는 ‘Rumination-Time’을 단순히 ‘되새김질만 하는 시간’이 아닌 시간선 위에 올라타 개인만의 시간을 노니는 개념으로써 명명한다. 우리는 시간선 속 고정된 위치가 아니라 현재에서 과거, 현재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 등 개인이 유동적으로 움직이며 본인만의 결과물을 도출하는 태도를 보인다.
‘박서연’은 사진 또는 기억으로부터 떠오르는 순간의 감정과 생각을 화면에 담아낸다. 이번 그녀의 작업은 작가 어머니의 옛날 사진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머니’는 작가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미래이다. 작가는 그녀와의 과거를 재구성함으로써, 현재와 미래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끼친다.
‘윤창무’는 그리는 당시의 순간들을 그림에 담는다. 계속 과거로 멀어져가는 그 시간이 그림에 낱낱이 녹아든다. 그려질 순간에는 어떠한 생각의 해소나 감정의 발산이었던 그림은 그려지고 난 후엔 그 순간들을 다시 불러오게 하는 일종의 기록으로서 작용한다.
‘이두형’은 주로 과거의 찬란했고 현재 그리워하는 순간들을 다시 회상하며 화면 안에 불러낸다. 이 과정에서 ‘되새김질’로 꺼내온 과거를 현재에서 다시 과거로 가져가며 역주행적인 태도를 가진다. 이렇게 소환된 과거는 현재에 뒤섞인 감정을 뿜어낸다.
‘한희’는 과거와 미래의 폭을 극도로 좁혀 현재를 기준으로 본인 앞에 놓여진 관계를 파악하고 대처한다. 이러한 태도는 작가 본인의 기억과 시각 매체가 혼합된 회화로 풀어내진다. 작업은 완성된 순간 자연스레 그 자리에 남겨지고, 후에 작가가 다시금 현재를 살게 만드는, 지워지지 않는 발자국으로써의 역할을 하게 된다.
모든 인간의 경험과 기억은 시간선의 맥락에서 구조화된다. 시간선의 맥락이 바뀌면 경험이나 기억의 구조도 바뀌고, 이러한 변화는 곧 개인의 변화나 치료의 효과로도 전환된다. 결론적으로, 전시를 통해 우리는 ‘되새김질’ 후 개인의 시간선(과거, 현재, 미래)을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태도를 제시한다. 이에 관객들이 이 태도를 발견하게끔 유도하며, 우리는 그들도 노닐 수 있는 참여의 장을 마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