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은 디지털 기반의 환경으로 보편화되고 있지만 이와 관련해 기업의 무분별한 사적 정보 사용 및 보안 위험성에 대하여 사실상 무방비한 상황이다. 더불어 최근 몇 년간 데이터센터와 통신선의 화재 등으로 발생한 데이터 블랙아웃 상황에서의 대응은 '디지털 재앙'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심각한 위기로 인식되고 있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의 사건, 사고로 발생할 데이터 블랙아웃 사태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본 전시는 이와 같은 데이터 블랙아웃 현상에 반응하는 디지털 환경과 기업의 데이터 독점에 종속된 우리들의 모습을 돌아본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를 활용한 작품들을 주목하고 데이터 장애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디지털 미디어의 활용이 필연적인 상황에서 데이터 블랙아웃으로 인해 발생하는 취약한 디지털 환경의 문제를 고민하고, 미술의 언어로 사회적 현상의 담론을 제기해보려 한다.
- 전시 일정 / 2024. 10.25 - 11. 23
- 운영 시간 / 화~금 11:00-19:00, 토 12:00-18:00 (일, 월 휴무)
- 장 소 / H.ART1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167 4층)
- 참여 작가 / 김지민, 민찬욱, 배재혁, 이도현, 이서진, 정성진, 정지현, 조영각 (총 8명)
H.ART1 FLOOR MAP
김지민 b. 1993 l @jeemin.studio
김지민은 영국에서 성장해 서구 문명과 그들의 고고학에 애착을 느끼면서도 그 과정에 수반된 폭력과 파헤침, 대상화에 불편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중간자적 정체성을 가지고 의도적으로 전시 안에 다양한 문명의 상징을 섞고 추상회화와 키네틱 설치로써 후대에 쓰인 역사의 부정확성을 이야기하되 재현하지 않는 무대를 꾸민다. 2021년부터 회화, 조각, 사운드, 퍼포먼스 등을 무대기술과 융합하여 토탈 인스톨레이션(Total Installation)의 형태로 특정한 장소를 몰입형 가상 공간으로 전환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Prototype Temple : 6ft Under_Valley〉은 조영각 작가와 협업한 작품이다. 김지민 작가의 회화 작업을 AI에 학습시켜 작가와 비슷한 결 혹은 완전 다른 화면을 생성해낸 영상이 재생된다. 그 옆에는 학습의 소스가 된 회화의 원본을 확인할 수 있다.
민찬욱 b. 1984 l @chanwookmin
민찬욱은 미디어 아티스트와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작가는 일상생활 속 순간에 대해서 탐구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순간에 집중한다. 대부분의 작업은 인터랙티브, 키네틱 인스톨레이션으로 일상생활 속 물체(Everyday Object)와 디지털 미디어를 접목시켜 여러 형태의 표현 방식을 탐구한다. 크리에이티브 테크놀로지스트(Creative Technologist)로서 그는 여러 가지 기술을 활용하여 인터랙티브 경험과 환경을 디자인한다.
〈또다른얼굴〉 시리즈는 인간의 관점이 아닌 기계가 생각하는 인간의 표정과 그 표정에 대한 작가의 해석이 섞인 작품이다. 단어 '얼굴'을 AI에 입력한 결과, 다양한 표정이 낙서의 형태로 생성되었다. 생성된 이미지를 바탕으로 기계가 종이 판넬 위 오일파스텔이나 캔버스 위 아크릴 등 여러가지의 재료로 드로잉 작품을 완성했다.
배재혁 b. 1984 l @jhyuck
teamVOID로 활동 중인 배재혁은 기술과 예술 융합을 통해 시스템적 관점에서 작업을 시도하는 미디어 아티스트이다. 인터렉티브 미디어, 키네틱 조형, 라이팅 그리고 로봇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실험적인 시스템을 구상하고 그것을 작품으로 구현한다.
작가는 자신만의 드로잉 방식으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채택했다.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프로그래밍을 우선 마치면 비로소 그 중에 몇 작업을 실제 물리적인 방식으로〈Still Triangles #1〉처럼 구현한다.
이도현 b. 1997 l @dohyeonlee.official
이도현은 현대 미술 분야에서 영상을 만드는 창작자다. 선험적으로 촬영 및 편집된 영상과 지금 이 순간 일어나는 퍼포먼스의 경계에서 작품을 만든다. 주로 비언어적인 신호와 몸짓에 주목하며, 오늘날 우리의 감각과 경험을 매개하는 것의 형식과 어법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나아가 존재들의 상호작용에 대한 이해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이를 미학적으로 구현하고자 한다. 이러한 실천은 전시, 미디어아트 및 프로젝트, 출판물의 형태로 노출된다.
〈허구의 존재로 명명하기에는 너무도 분명한〉은 2023년부터 작업을 시작해 올해 출품한 신작이다. 세계가 종말한 후 남겨진 누군가를 상정하고, 그 사람한테 보내는 영상 편지인 셈이다.
다만 '이 영상편지를 받게 될 존재가 인공지능이라면 남겨진 인공지능은 뭐라고 받아들일까?' 하는 물음에서 시작되었다.
작가는 인류가 그간 만들어낸 문화(가령 소설이나 영화 등)에서 문장을 선정하였고, 영상에 등장하는 발화자가 그 문장들을 읽는다.
모니터 앞 설치된 망에 투과되는 빔 프로젝터 영상은 TV모니터에 등장하는 형상(발화자 등)을 AI의 방식으로 시각화한 것이다. 제일 뚜렷하게 인식한 부분이 빨간 부분, 그렇지 않은 부분이 파란 부분이다. 하단 부분에는 문장과 단어가 나타나는데 이는 곧, AI가 편지의 내용을 해석하면서 알고리즘을 만들어 낼 때 본래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은 판단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서진 b. 1995 l @rockndol
이서진은 디지털 매체와 여러 기술의 발달로 복제된 가상의 이미지들로 이루어진 현실에 존재하고, 가상공간, 비물질적 데이터의 세계로 이루어진 새로운 차원, 즉 판타지라고 여겨졌던 공간 속에 우리가 속해 있음을 깨닫는다. 현실 속 유영하는 가상의 데이터 이미지들을 단순히 시각적인 요소로 수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지각 반응을 통해 사유적으로 접근해 본다.
작가는 가상과 현실을 허무는 작업을 한다. 〈스쳐지나간 외계성간전체〉 역시 3D모델링으로 만든 탑 모형이며 작가의 모델링에서 비롯된 형상이다.
기존에는 현실과 가상을 이분법처럼 구분짓고 작업했으나, 점차 '가상도 현실과 다를 바 없는 데이터 기반의 물질 세계'임을 인식하고 VR 작품 <Heavy and Light>를 제작했다.
VR 근처의 물에 잠긴 탑 역시 작가의 생각을 반증한다. 물이 찬 상태의 탑의 아래 부분과 그렇지 않은 탑의 위 부분은 바깥에서 보았을 때는 크게 다르지 않게 그저 물에 잠긴 탑처럼 보이나, 미시 세계로 들어가 보면 위 아래 이루고 있는 성질이 아주 다르다는 것을 설명한다.
정성진 b. 1987 l @sungjin_jung
정성진은 무의식적 감각의 세계를 어떻게 하면 물리적 실체로 끌어올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디지털 매체를 이용한 작업을 시작했다. 우리의 뇌는 보이지 않는 시각정보의 틈을 메꾸고 연속적 이미지로 재구성한다. 우리의 감각이 불완전함에도 온전히 삶을 살아가는 것은 이런 무의식의 역할 때문이다.
사람의 손길이든 기계의 개입이든 물성으로 구현되는 순간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변형된다. 작가는 무의식의 개념을 조형화하기 위해 어떤 결과를 추구하는 대신 만들어지는 과정의 우연성에 집중한다. 도시나 공간의 일부를 3D 데이터로 만드는 과정에선 정보가 탈락하고 추상화되며 그것을 다시 종이나 플라스틱과 같은 물성으로 끄집어낸다. 데이터와 실재 간의 순환 과정에 불완전한 의식과 감정을 투영시키는데, 이것을 우리의 삶과 예술적 태도와 연결시킨다.
정지현 b. 1991 l @jhjung91
정지현은 일상 사물에서 사용자를 연상하고, 사물에 대한 경험을 조형으로 표현한다. 도구를 사용하는 몸의 움직임이나 통증, 사물에 의존하는 신체가 작업의 소재가 된다. 최근에는 사물의 가학적 이미지와 신체를 연결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 작가는 사물이 서서히 신체의 변형을 일으키고 이를 또 다른 사물로 되돌리려 한다는 점, 그리고 힘을 가하는 주체와 당하는 신체가 동일하다는 점이 동시대 인간상의 자학성을 내포한다고 본다.
<Glasses>는 천체망원경의 형태에서 착안한 작품이다. 이 망원경은 보는 방향이나 위치에 상관없이 가상의 행성 이미지만을 보여주며, 실제 관찰 기능은 차단된다. 작품은 아이폰의 기능적 가능성보다는 물질적 특성과 형태를 강조하여, 디지털 기기에 대한 몰입을 의도적으로 차단하는 데 목적이 있다.
조영각 b. 1986 l @youngkakcho
조영각은 인공지능, 데이터 사이언스, 로보틱스 등을 활용하여 불확실한 미래의 시나리오를 현재에 투영한다. 이를 통해 동시대 사회의 복잡계적 상황을 연출하며, 관객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시각을 제시한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상상계와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세계관이 구축된다. 끊임없이 가속화되는 현대 사회의 속도와 복잡성을 예술적으로 승화시키며, 관객들에게 우리를 둘러싼 복잡계적 세계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공한다.
〈대화 상자〉는 택배를 개봉하는 행위 즉, ‘언박싱(Un-boxing)’이라는 콘텐츠 장르화 된 일상적인 경험을 기반으로 한다. 이를 통해 일상 속의 단순한 행위를 변형한다.
종이 상자가 스스로 열리고 닫히는 상황을 키네틱 설치로 구현하고, 상자 안에 들어있는 모니터는 인공지능 기술이 사용된다. 각 상자별로 제작된 상황과 이동, 유통 그리고 분리수거로 버려지는 상황에 대하여 각기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동', '유통' 등의 키워드를 넣은 결과는 인공지능 언어 모델들을 통해 구현한다. AI의 문장들 그리고 놓인 박스들에서 관객에게 현대인의 소비 습관과 환경 문제에 대한 고찰을 이끌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