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SAN

고현정 Solo Exhibition


《우리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

19. March - 5. April 2024 

쌓기, 매만지기, 이어가기 - 고현정 개인전 《우리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에 부쳐


   지난 2월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시선이 향했던 곳은 벽 끝 쪽에 걸려 있던 〈플로리스트〉였다. 자신의 몸집보다 더 큰 꽃 무더기를 어깨에 툭 얹어놓고 무심히 발길을 옮기는 어떤 이의 모습. 과감히 생략된 이목구비와 대조되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꽃들의 얼굴들. 어깨 위로 늘어지다 못해 흘러내리기 시작한 이들 개체 사이로 분명 무언가가 꿈틀거리고 있다. 애써 억누르지 않았기에 초과하고, 새어 나오고, 전이되는 어떤 것. 그것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전면적인 움직임이 되어 작업 사이를 순환하며, 이번 전시의 조형적 맥락을 직접적으로 관통하는 원리로서 작동한다.

   이 원리를 초과, 혹은 과잉의 원리라 명명한다면, 그리고 무언가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과 작가가 그림의 대상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연동시킨다면, 《우리는 매일 다시 태어난다》(2024)의 작업은 지칠 줄 모르는 작가의 보기 충동과 그로부터 생산되는 무수한 살아있는 장면들의 기록으로 비칠 수 있을 테다. 작가의 작업에서 초과는 은유가 아닌 지표적 실재로서 캔버스 위 안료의 두께나 붓질의 흔적으로 존재하며, 화면을 가득 채운 반려동물의 형상이나 원근과 크기의 변주가 생략된 채 균일하게 그려진 자연물처럼 재현의 대상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 재현 방식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한편, 작업에서 관찰되는 촉각적 질감이나 두꺼운 물성, 과장되거나 왜곡된 형태의 반대편에는 계속해서 소진되는 현재가 있다. 지금-이곳의 시간이 얇아질수록 회화는 부피를 더해가며, 작가는 이 둘의 균형점을 직감적으로 알아채고 납작해진 현실의 층위를 그리기의 방법으로 복구하려 한다. 눈으로 목격한 대상에 눈으로 다 담을 수 없는 것을 담기, 매일 이 세계를 겪어가고 있는 자신의 몸으로 타자의 살을 더듬기. 이처럼 초과적 실재를 담은 고현정의 회화는 넘치는 잉여를 지속해서 생산해 내며 이미지 이면에서 곧 스러질 존재들의 생을 내일로 연장한다.


초과의 전략 01. 크기와 시점

고현정의 회화에서 먼저 주의가 요구되는 대목은 캔버스에 그려진 대상들의 크기와 이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점이다. 구체적인 묘사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그러나 대상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관찰하겠다는 집요한 의지는 세계와 작가의 접촉 지점을 평균치보다 훨씬 가깝게 만든다. 근시적인 구성과 평면성의 강조를 기본 규칙으로 채택한 이래, 작가는 대상과의 적절한 거리두기를 포기하고 ‘오류의 한도’[1] 내에서 대상을 한껏 확대해 보여준다. 이때 오류란 객관적 사실성에서 벗어나 있을지언정 현실적인 것의 부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의 근거를 수정하고 매만져가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새로운 재현을 의미한다. 크롭된 사진의 일부처럼 캔버스를 가득 채운, 그러나 해상도는 더욱 옅어진 화면 속 대상들은 화가의 시선이라는 장치를 경유해 구체적 정보가 휘발된 채로 제시된다. 따라서 크기는 일종의 함정이다. 마치 세부를 들여다볼 수 있을 것 같은 근거리의 감각을 유발하지만, 실제의 화면은 모호함만을 증폭시키는 것이다.


초과의 전략 02. 층과 물질

이처럼 이미지의 설명성이 소거되었을 때, 이를 대신하는 것은 설명이 불요한 자족적인 물질이다. 명암과 투시, 환영이 사라진 자리에서 관람자는 덩어리져 굳어진 물감층을 본다. 그것은 어떤 의미나 형태를 부여받기 이전에 지지체 위에 겹겹이 얹히는 단면으로서 회화적 기제를 드러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다만 표면이 회화 전체를 대변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그것은 자체로 레이어 아래 감춰진, 혹은 회화적 언어로 전면화 되지 못한 비가시적 속성이 존재할 가능성을 함축하기도 한다. 따라서 화면에 등장하는 대상들은 대상이기 이전에 스스로를 조직하는 물질이며, 더 난해하게는 그 둘 모두이다. 이들은 이것이기도 저것이기도 해서 관람자가 무엇을 직관하고 있는지 쉽게 단정지을 수 없게 만든다. 예컨대 〈그 시절 우리 강아지〉에서의 개와 고양이든, 〈주먹의 맛〉의 주먹이든, 이미지이기 이전에 그것은 두껍게 쌓인 물감과 그 위를 휘적이는 붓의 정지와 운동이다. 그리고 이는 분명 그 너머 표상으로 붙들어 놓을 수 없는 것이 있음을 전제한다. 반려동물의 온순함 뒤에 숨겨진 야생성이나 꽉 쥔 주먹 안에 숨겨진 손톱자국과 땀방울처럼, 그저 그림으로만 바라보았다면 결코 알 수 없었을 가능성이 봉인이 풀리기 직전의 상태로 놓여있는 것이다.


초과의 전략 03. 복수의 의미

이미지의 특정한 형태로 대상을 포착하되 재현의 전통성을 넘어서는 고현정의 회화는 결국 하나의 현실을 초과해 다수의 현실로 나아간다. 이는 형상이, 물질이, 그것도 아니라면 이 둘 모두를 포괄하는 더 큰 현상이 한 화면 안에 공존하며, 그로 인해 복수적인 의미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의미는 작가에게도, 관람자에게도 귀속되지 않음으로써 그 무엇도 유일하거나 우월하지 않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이처럼 의미의 서열이 자유로이 위치를 바꾸는 복합적 현실이야말로 타자와 살을 부대끼고 몸을 맞대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Good Fellas〉[2]의 비인간 존재들을 보자. 이들은 반려동물 유치원에서 인위적인 만남을 가지고 저마다 한가로이 오후를 보내는 중일 수도, 그와 정반대로 인간을 곯려 먹일 거나한 사고를 치기 위해 작당모의 중일 수도 있다. 우리의 관심과 돌봄을 필요로 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이들의 전부는 아니다. 능동적으로 가치를 설정하고, 사건을 발생시키고, 인간과 대등한 위치에서 위협을 가하기도 하는 주체로서 이들은 앞서 ‘이것과 저것’으로 언급된 바 있는 다면적 존재가 된다. 다만 이들이 생성하는 복수의 의미는 대상화에 의해 주체와 객체가 극명히 나뉘는 현실에서는 좀처럼 발생하기 어렵다. 그래서인지 모종의 기시감에도 불구하고 회화가 그리는 장면들은 현실과의 간극을 상기시키며 도리어 비현실로 향해 가는 듯 보인다. 이 비현실의 장면을 통해 작가가 보이고자 하는 것은 결과로서의 공존이 아니라 차이가 발화되는 과정이며, 서로의 경계를 약화하는 접속과 조우의 가능성이다.


나가며

작업실을 나서기 전 작가와 마지막으로 나눴던 이야기를 복기해본다. 전시 제목의 의미를 묻는 질문에 ‘무엇이 변화했는지를 매일매일 확인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라는 답이 돌아왔다. 소박한 말이지만 상투적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러한 말들의 기저에는 상대를 나에 맞추기보다 자신이 상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해 그곳에서의 변화를 함께 겪어보겠다는 태도가 자리하고 있다. 관계로 이어져 있으면서도 연동되기는 망설여졌던 것들, 봄과 보임, 만짐과 만져짐 사이의 불균형으로 인해 자주 한쪽으로 미끄러지고 마는 존재들이 작가가 피부로 체험하고자 하는 것들이며 그의 세계에서 매일 새로이 태어나는 존재들임을 고현정의 회화는 물질과 대상을 가로지르는 초과를 통해 보여준다. 분명히 보고 있다고 믿을 때도 실상 깊이가 결여된 평평한 거울의 면을 마주하고 있을 수 있다는 의심은 날카로운 시선이 아닌 뭉툭한 신체의 움직임으로 타자의 깊숙한 곳을 어루만질 수 있게 했다. 거울로 둘러싸인 자기 반영적 세계가 아닌, 주변과 함께 변화하고 되어가는 회화의 세계. 인간과 자연, 신체와 사물 등 모든 것들이 균등하게 제 자리를 찾아 갱신되어 가는 길 위에 결코 쉽게 짊어질 수 없을 무게를 지탱하고 걸음을 옮기는 누군가가 있다.


글. 임현영

 


  


[1] 질 들뢰즈, 186. 『니체와 철학』, 이경신 옮김(서울: 민음사, 1998), 186.

[2] 해당 작품의 제목은 1990년 개봉된 미국의 범죄 영화 〈좋은 친구들〉(마틴 스코세이지 작)에서 차용한 것이다. 에어프랑스 도난 사건과 루프트한자 강탈 사건을 바탕으로 범죄 조직 안에서 발생하는 음모와 배신을 다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