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NGSAN
김서연 Solo Exhibition
《메라키메라》
10. January - 27. January 2024
사랑은 언제나 그곳에, 우리가 가야 하는 곳, Love is Always Part of Me[1]
사랑이 진부하고, 연약하고, 쿨 하지 못한 것이 되어버린 이 시절에 우리는 사랑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그런 건 일기장에나 쓰시라고?
《메라키메라: Meraki-Chimera》는 미술작가 김서연이 수신자 없는 불특정 무선국에 송출하는 사랑에 대한 편지이자 일기장이다. 수신자가 없는 편지, 애초에 나만 읽으려 쓴 일기. 이러한 방식은 일방적이지만, 일방적이기에 사랑에 대한 그 어떤 경건과 거룩을 치장할 필요가 없다. 사랑을 둘러싼 가혹한 현실이나 막연한 이상을 말하지 않는다. 그저 항상 그의 곁에 머물러 있는 한없이 밋밋하고 소소한 일상을 담담하고 무방비하게 감각하고 그것을 회화로, 드로잉으로, 오브제로 털어놓을 뿐이다.
이렇게 김서연식 사랑은 담담하고 무방비하게 곁에 두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러고는 이내 집요하리만큼 구석구석 뜯어 살핀다. 이러한 맥락에서 〈Cut, Shape, Form〉(2023)은 그와 함께 살고 있는 개, 찌부를 향한 그의 애틋한 시선을 보여준다. 그의 면밀한 시선은 작은 단위의 서로 다른 이미지들로 구조화되고, 이 이미지들은 각각의 서사로 힘을 발휘하면서 사랑은 더 견고해진다.
이러한 사랑은 꽤나 직관적으로 이루어진다. 그 어떤 이성적 판단이나 이해 따위의 사색이 보태어져 생기기보다는, 손 끝의 피부로 어루만지고, 매만지고, 문지르고, 새길 때 생성된다. 따라서 김서연은 연필, 목탄과 물감을 손으로 직접 문지르거나, 긁어내고, 어루만지며 덧입히기를 반복적으로 수행한다. 이것은 보이지 않는 사랑을 보이게 만드는 그의 얕은 결의다. 사랑, 희망, 만질 수도 없고 보이지도 않으며, 쉽게 휘발되어 버리는 가치들을 간절하게 지키고, 마음 속 깊이 따르려는 순수한 감정이다. 그의 이러한 기품 있는 자의식은 이번 전시 《메라키메라: Meraki-Chimera》를 전반적으로 관통하고 있는 중요한 지점이다.
특히 〈메라키메라〉(2023)는 그가 사랑을 다루는 태도를 가장 잘 보여준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메라키메라'는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쏟아 붓는다'는 의미의 메라키(Meraki)와 '하나의 생물체 안에 유전 형질이 다른 세포가 함께 존재한다'는 의미의 키메라(Chimera)를 작가가 자의적으로 합성한 단어로, 한 대상에 대한 양가적인 태도 혹은 상태의 무한한 회전운동을 함의한다.
다시 〈메라키메라〉(2023)로 돌아가보자. 이 작품에는 작가의 할머니가 직접 뜬 하얀 레이스 커튼과 그 사이 사이로 부유하듯 떠있는 천사들, 익명의 사람들이 투명하고 여리게 켜켜이 중첩되어 나타난다. 할머니의 단정하고 고운 애틋함은 김서연이 덧칠하고 문지른 하얀 물감을 통해 여리지만 단단하게 성기는 불꽃같은 섬광 줄기가 되어 회화 표면을 가득 채워 나간다. 애틋한 섬광 세례를 받는 천사들, 엉성하게 형태만 갖춰진 익명의 사람들은 더 맑고 무해해진다.
김서연은 이처럼 물감을 덧칠하고 문지르는 과정을 통해 사랑, 희망, 순수함, 애틋함, 정직함과 같은 가치들을 '메라키'한다. 그는 이러한 소중한 가치들을 온 마음을 다해 지키고 싶지만, 동시에 그것이 쉽게 사라져버릴까 두렵다는 점에서 '키메라'이다. 끊임없이 동경하고 흠모하면서도 동시에 끝없이 불안하고 두려워 달아나고 싶어진다. 역설적이게도 키메라같은 이 모순이, 이 이중성이 다시 메라키를 소망하게 하는 자연스러운 발상이 된다. 김서연에게 메라키, 즉 온 마음을 다해 사랑을 쏟아붓는 경지는 비범하고 예외적인 것이 아니라, 매일 매순간 우리가 우리 안의 모순과 갈등을 부딪히고 극복하며 궁극적으로 향해야 할 곳이다.
[1] 가수 이소라의 7집 앨범 속 수록곡인 〈Track 3〉의 가사를 인용했다.
글. 이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