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차주희 Solo Exhibition

<눈을 감고>

25. Apr 2023 - 14. May 2023


눈을 감고



차주희는 보이지 않는 인간의 정신성을 가상의 형상과 공간으로 표현한다. 작가는 불완전한 과거의 기억이 현재와 만나며 매 순간 새롭게 재해석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기억을 담고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게 되었다. 이는 작품을 제작하는 과정에 많은 영향을 미쳤고, 작가는 기억을 통해 바라보는 현재의 순간들을 이미지로 표현하여 마주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신적인 이미지는 작가의 새로운 시작점이 되었다.

작업의 모티프가 되는 것은 숲과 바다에서 발견되는 생물의 파편적인 조각들, 식물의 섬세한 구조와 선, 빛의 색채, 물에 비친 이미지이다. 작가가 자연을 관찰하며 작품에 영감을 얻는 방식은 어릴 적 보았던 밤하늘의 기억과 과거 서울과 파리에서 플로리스로 일하며 몸으로 체화된 시각과 손의 감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가는 발견한 자연의 요소들을 관찰하고 그들이 가진 고유한 형태를 단순화하는 드로잉의 과정을 통해 추상화된 이미지 조각을 만든다. 무의식이 이끄는 대로 결합된 조각들은 동굴의 형태를 띠기도 하고 기묘한 식물의 형상을 지니며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공간을 구축한다. 새롭게 생성된 형상과 공간은 납작하고 얇은 2차원의 표면이면서 작품 앞에 선 관객의 심리적인 공간으로 확장되기 위해 물감과 재료의 겹을 쌓는 수행적인 작업 방식으로 물질적 밀도를 쌓아간다. 얇고 투명하게 쌓인 겹은 색이 표면에만 머물러 있는 느낌을 주며 투명성을 얻는다. 투명한 겹으로 이루어진 평면적인 공간은 눈으로만 들어갈 수 있는 순수한 시각적 일루전(illusion)의 공간감을 뜻하며, 가볍게 부유하는 느낌으로 인간이 지닌 정신성의 존재 방식을 은유한다.

차주희는몇해전제주도로이주하여독특하고원초적인섬의환경속에서더큰자연을 경험하고 감각하며 새로운 형상들을 그리고 있다. 그는 이번 전시 ‘눈을 감고’를 개최하며 섬에서 발견한 강한 생명력과 자연의 모습 속에 투영되는 감정들, 책을 읽으며 영감을 받았던 긴 밤의 시간 들을 시적인 이미지를 통해 관람객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전시를관람한후,눈을감고천천히생각해보자.인간의마음이자연속에투영된예술적 형상이 당신의 마음속에도 있는가. 그렇다면 눈을 감고 마음속에 스며든 삶의 한 조각을 그려볼수있는시간이되었기를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