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이향아 Solo Exhibition
<무너진 탑에 빈 소원>
7. Feb 2023 - 26. Feb 2023
무너지며 태어나는 세계
이야기는 붕괴의 장면에서 시작한다. 타오르는 불꽃 아래로 풍경은 속절없이 사라지며(〈사라지는 풍경〉), 무너져 버린 지 오래인 듯 〈조각난 탑〉은 담담하게 텅 빈 속을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아직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는 않은 풍경에서도 붕괴는 그 징조를 드리운다. 어떤 이는 반쯤 쓰러진 모래성 곁에서 다시금 토대를 다져보지만 모래성 너머에서 뻗어 나온 물줄기는 풍경을 가로 지르며 그 노력마저 무색하게 만든다. (〈성 쌓는 풍경〉) 어떤 손들은 스스로 쌓은 성을 부수고자 아우성치며 점차 붕괴로 다가간다. (〈성 쌓고 부수기〉) 쌓아 올리려는 의지와 결코 멈출 수 없는 힘의 작용이 끊임없이 충돌하며 결국 붕괴에 이를 결말을 예측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첫 장면이 되기에는 어쩌면 무력하고 허망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시의 제목이 암시하듯, 적어도 이향아의 세계에서 붕괴는, 이야기의 ‘마침표’가 아니라 새로운 전개를 위한 ‘발단’이다.
작가의 시선은 붕괴라는 사건을 넘어서 그 이후를 향한다. 그곳에는 ‘온전함’에서 탈락해버렸거나 ‘하나’였던 몸에서 떨어진 존재들, 우리가 흔히 ‘잔해’라 부르는 것들이 남겨져 있다. 이들은 삶에서부터 떨어져 나와 점차 죽음으로 향하는 불길함이나 더이상 쓸모를 찾을 수 없는 무용함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리고 동시에, 잔해는 붕괴 이전의 기억을 머금고 있기에 아득하며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상흔이기에 간절하다. 작가는 그렇게 모든 것이 끝났다고 여겨지는 순간에도 남겨진 것들이 이어가고 있을 얕은 호흡을 감지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조개껍데기나 과일 껍질, 앙상한 뼈, 몸통 없이 떨어져 나온 새의 날개와 같은 파편을 그러모아 화면 위에 옮긴다. 그리고 몸을 잃어버린 그들을 다시 ‘몸’으로 삼아 그 위에 다시 시작하는 이야기를 덧그린다. 그 세계에서는 버려진 조개껍데기에서 새로운 몸이 태어나거나(〈껍데기〉) 마른 땅 위에서도 씨앗이 생명을 틔우기도 한다. (〈사막과 과수원〉)
여기서 더 나아가 작가는 남겨진 것들이 내쉬는 숨의 궤적을 상상한다. 본래라면 그들의 숨은 단단한 물질에 가로막힐 것이며 움직임을 잃은 채 한 지점에 정박할 수 밖에 없지만, 작가는 새로 태어난 그들의 몸에 숨을 그려 넣을 방법을 고안한다. 물감을 흩뿌리거나 이미지를 탁본하거나 실제 흙을 덧칠하는 등 종이 위에 움직임을 남길 수 있는 여러 기법을 시도해 본다. 그렇게 남겨진 흔적은 그저 화면 위를 부유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거칠고 때로는 섬세한 잔물결처럼 화면 전체에 파동을 일으키며 퍼져나가게 된다. 이미 깨지고 버려졌던 그들의 몸은 여전히 폐허와 같이 앙상하지만 새로이 그려진 서사로, 숨으로, 온전히 그 세계의 전부가 된다. 그래서 이곳에는 살아있음과 죽음의 상태가 공존하며, 하나의 의미 또는 개념으로 쉽게 규정되지 않는다.
이 세계가 지닌 이러한 성질은 작가의 그리기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 작가는 자신이 그려가는 서사가 나아갈 선형적인 흐름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이야기가 스스로의 중심으로부터 점차 확장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중심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직접 성과 탑을 세워가며 중심을 찾는 방법을 고민하기도 하며, (〈중심찾기1,2,3〉) 불 타는 세계 속에서 새카맣게 말라버릴지라도 중심을 잃지 않고 꼿꼿하게 자리를 지킬 수 있기를 고대한다. (〈중심찾기-예감〉) 때로는 이들이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중심으로부터 솟구치는 바람에 맡긴다. (〈소용돌이-춤〉) 여기서 작가가 선택한 흐름이 소용돌이라는 점도 주목할 지점이다. 소용돌이는 서로 다른 성질이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현상이며, 그 중심에는 고요하고 변치 않는 ‘눈’이 도사리고 있다. 살아있음과 죽음, 소멸과 존재, 그리고 무너져 내리려는 힘과 그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고자 하는 힘이 공존하고 충돌하는 세계에서 소용돌이는 비로소 솟구칠 수 있게 된다. 즉, 이 소용돌이는 미약한 세계를 휩쓸어버리고자 바깥에서 안으로 들이닥친 힘이 아니라, 더 넓은 영역으로 약동하기 위해 안에서 바깥으로 뻗어나가는 하나의 궤적인 셈이다.
이향아는 ‘남겨진 것’들이 무엇이 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상상하며 마치 이야기를 써내려 나가 듯 차근차근 나아간다. 잔해였던 파편들이 숨을 얻게 되고, 움직임을 얻게 되었으며, 더 이상 한 공간 안에 가둘 수 없게 되었을 때, 이야기는 또 다른 세계로 확장될 가능성을 얻는다. 작가의 그리기 방식은 마치 서로 뒤엉키면서도 길게 뻗어나가는 새끼줄처럼 계속해서 그 너머를 상상하고 향해간다. (〈꼬리잡기〉) 그리고 그 너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작은 우주로 묘사된다. 이 소우주는 길고 긴 상상의 끝에서 넘어서야 할 다음 챕터로 향하는 통로처럼 보이기도 한다. 통로로서의 이미지는〈공간의 그물〉에서 보다 명료해진다. 그물이 끊어진 사이에 조개 껍데기가 자리하는데, 앞서 보았듯이 이곳에서 텅 빈 조개 껍데기는 쓸모를 다 해 버려진 잔해의 상징과도 같다. 작가는 그의 깨진 틈을 빌려 새로운 몸을 그려넣었고, 이제는 그 몸을 넘어서 나아갈 다음을 상상하며 작은 우주를 담아 넣는다. 하나의 잔해에 지나지 않았던 조개 껍데기가 무한한 가능성을 머금으며 다른 세계로 향하는 통로로 거듭나는 것이다. 이곳의 작은 우주에서는 때때로 폭발이 일어나며 또 다른 붕괴를 암시하기도 하지만(〈소용돌이-폭발〉) 붕괴는 이 세계를 위협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또 다른 이야기로 나아가는 ‘발단’이 될 뿐이다. 그렇게 깨어진 잔해로부터 세계는 또 다시 태어나며, 전에 상상한 적 없는 곳으로 향해 갈 것이다.
글 서다솜(독립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