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고캔디 Solo Exhibition

<Portraits>

14.  Aug - 25. Aug 2019



창과 더미

<심판>으로 번역된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 <소송>(독일어: Der Prozess)은 ‘누군가 요제프 K를 중상모략한 게 분명했다. 아무런 나쁜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이날 아침 느닷없이 그가 체포되었기 때문이다.’로 시작한다. 자신의 서른 한번째 생일날 소송에 휘말리고 누가 그에게 소송을 걸었는지, 아무 죄도 짓지 않았는데 유죄 추정을 받는 이유도 모르는 채, 무죄인 상태에서 어쩌면 거짓으로 자신을 고소하는 K는 점점 소송에 집착할수록 고소 받을만한 죄를 하나씩 저지르게 된다. 고캔디Candy Koh의 포트레이츠Portraits는 마치 삶의 끝없는 ‘소송 절차’에 기소당한 자들의 포트레이츠Portraits처럼 느껴진다. 소송 당했다는 통보를 받고 점점 삶에서 추방받고 있는 상처받은 귀신들 같기도 하고, 대인기피증에 걸린 사람들 같기도 하며, 음(音)이 소거되었을 뿐 입을 벌린 괴물들의 비명에 사로잡힌 듯 보이기도 한다.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을 고발한 K로서 자기 자신인 것 같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다른 것들도 있다. 


고캔디는 법을 공부하고 변호사 자격증까지 취득하지만, 법을 다루는 언어와 사회가 ‘공감(empathy)’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이 “사람들이 감각을 많이 쓰지 않고 이성주의로 돌아가는 전회에서는 감각”이 제대로 살트기 어렵기 때문에 작업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내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머리가 아닌) 좀 느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다. 


고캔디는 이러한 카프카스러움, 카프카적 상황(Kafkaesk)을 자초하며 언어론적 전회linguistic turn의 소송에서 의도적으로 자신의 결백함을 증명하는 데 실패한다. 대신 법정이라는 세계의 폭력적 소송 앞에 무정하고 불길한 선들로 포트레이츠Portraits를 위한 거처를 마련한다. 어울리지 않는 색들이 주로 같이 있는 것도 문제들이란 항상 불편한 법이기 때문이고, 너무 예쁘다 싶으면 그걸 파괴시키는 다른 색깔을 넣는 것도 글로서는 풀어지지 않는, 침잠해 들어가는 지점에서 조우하는, 현실이 아닌 꿈의 세계에서의 몽상과 트랜스trans를 위한 것이다. 


조르지오 아감벤Giorgio Agamben의 <행간: 우리는 왜 비현실적인 것에 주목해야 하는가(원제 Stanze: la parola e il fantasma nella cultura occidentale)>에 인용되는 중세 대학의 한 표어는 이렇게 전한다. ‘인간은 유령 없이는 아무것도 깨달을 수 없다 (Nihil potest homo intelligere sine phantasmata)’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