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LJI-RO


손유화 Solo Exhibition

<모히또에서 몰딩 한 잔 A cup of molding in Mojito>

23. Sep 2022 - 11. Oct 2022


   

모히또에서 몰딩 한 잔


북해에서 항해를 시작한 로잘린 크라우스는 '기술적 지지체(technical support)'에 대한 이야기를 돛대로 삼아 나아간다. 이는 회화, 조각 등과 같은 전통적인 매체에서 뿐만 아니라 영화, 사진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활용하는 매체까지 이어진다. 전통적인 매체는 상대적으로 예술의 물리적 규정 방식이 유연하지 않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이러한 매체가 당시에 쇠퇴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렇기에 크라우스의 항해에서 회화는 주요한 분석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동시에 "이제 회화에서 가장 중대한 문제는 물질적 표면의 평면성과 같은 회화의 사물적인 특징들이 아니라 회화의 특정한 발화 양식(mode of address)을 이해하는 것" 이라는 이야기를 통해서 회화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에서 회화는 두 가지 질문이 생긴다. 회화에서 기술적 지지체에 대한 이야기의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것일까, 회화의 특정한 발화 양식이라는 것은 어떠한 것일까.


회화에서 말그대로 기술적 지지체를 찾아본다면 캔버스가 된다. 팽팽하게 당겨진 그 장력 위에 물감은 쌓이고 캔버스와 붙어 있다. 이 지지체와 표면은 긴 역사 속에서 늘 서로 견고하게 붙어있어 왔다. 손유화 작가의 '모히또에서 몰딩 한잔' 이라는 제목은 견고한 회화의 문법에서, 문장에서 잘못 들어갔다고 여겨지는 모히또와 몰딩의 도치에서 시작한다. 하지만 이 문장은 원래의 위치로 여겨지는 곳으로 다시 자리를 변경해도 동일한 문제에 직면한다. 몰딩은 누군가가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벽과 천장이라는 서로 다른 두 건축 구조를 연결하는 몰딩은 사실상 장식적인 역할을 하지만, 거의 필수적으로 모든 건축에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벽과 천장처럼 넓고 평평한 면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것을 지지체로 삼아 서있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 된다. 하지만 여기에서 회화의 재료인 물감에 주목하여 기술적 지지체 논의를 오버랩 해본다. 회화의 특정한 발화 양식은 그 지지체 위의 물감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캔벗 위의 물감은 튜브를 짰을 때 나오는 그 형태를 기반으로 경첩이나 건전지와 같이 표면에 채색을 하면서 다른 이미지로 보여지거나, 축약을 뜻하는 아포스트로피의 상징성 그자체가 되기도 하며, 기존 작업을 다시 리모델링 하기도 한다. 혹은 더 나아가서 그 지지체인 캔버스에서 벗어나서 합판 위에서 튜브 속 물감의 형태를 드러내고, 회화에서 활용되는 도구 바로 위에 물감을 다시 더하면서 캔버스라는 지지체를 벗어나기도 한다. 생산 넘버(MFG)가 붙은 물감과 오브제의 뒤섞인 장면은 회화에 활용된 바로 그 재료를 전면에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회화에서 필수적인 발화 양식인 물감의 특징에서 더 나아가 또 다른 지지체가 되기도 한다. 모히또와 몰딩 사이의 관계는 결국 어긋나거나 도치된 문법을 통해서 오히려 그 근간의 무엇인가가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항해를 시작하기 전 그 바닷가에서 모히또를 한 잔 마신다고 상상해보자. 아니 모히또에서 몰딩 한 잔을 마신다고 떠올린다면, 몰딩 장식에서의 항해도 가능하지 않을까. 흐른 뒤 굳는 물감이 있다면 그것도 꽤 시작해볼만하다. 


김맑음(미술비평)